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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태어난 것 같은 생일을 보냈습니다.

category 독서모임 2021. 8. 23. 00:18

 8월 19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더 뜻깊은 하루가 됐습니다.
이번 생일은 지금까지의 생일과 많이 다르게 보냈습니다. 이전의 생일들은 제가 가지고 있던 틀 안에서 보냈다면 이번 생일은 제 삶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을 해봤습니다. 가성비를 따지고 비싼건 허세라고 생각했던 날들과 이별하기 위해 큰 결심을 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갤러리에 딸려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신라호텔에서 애플망고빙수를 먹은 후에 울프강스테이크하우스에서 코스요리를 먹었습니다. 어디에서 뭘 먹었다고 자세하게 얘기하는게 낯부끄럽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그대로 적었습니다.

생일에 뭘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 생일에는 나자신 보다는 함께 있는 사람과 같이 하면 좋을 것들을 생각하게 돼서 아쉬움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그럼 올해엔 내가 하고 싶었던걸 해보자 마음먹고 뭘 할까 하다가 요새 읽고 있는 아비투스라는 책의 내용이 떠올라 부자들의 문화체험을 한번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호캉스를 할까 하고 호텔1박에 수영장과 조식이 포함된 패키지를 고민하다가 결제까지 하려는데 막상 결제하려니 부가세와 봉사료가 붙어 거의 백만원이 돼버려서 포기했습니다. 그대신 거기서 파는 망고빙수를 먹고 저녁을 비싼걸 먹기로 하고 생토마토와 양파를 만사천원에 파는 울프강스테이크하우스가 생각나 옳다구나 결정했습니다.

점심은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를 보고 거기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었습니다. 루꼴라를 좋아하는데 시키는 음식마다 루꼴라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전체적인 건물의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구에서 구불구불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작은 정원이 나오고 그 정원에는 하얀색 1인용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지대가 높은곳에 위치해서 잔디밭에서는 종로가 훤히 보였습니다. 평소에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지으면 좋겠다싶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신라호텔로 이동해 이만오천원하는 발렛을 이용해 주차를 하고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두 시간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호텔구경을 좀 하고 면세점도 갔다가 다시 로비로 돌아와 그곳에 마련된 소파에서 쉬고 있으니 금방 순서가 돌아와 입장했습니다. 당연히 망고빙수를 시킬거였지만 어떤걸 얼마에 파나 궁금해서 메뉴판을 한번 쑥 둘러보고 먹으려고했던 망고빙수를 시켰습니다. 제주산 애플망고빙수 육만사천원이었습니다. 이십분정도 후에 육만사천원짜리 애플망고빙수가 나왔습니다. 둘이 먹기에 충분하고 셋이먹어도 괜찮게 먹을수있는 양이었습니다. 망고가 최소 세개는 들어있을만한 양이었습니다. 동네마트에서 파는 애플망고도 하나에 만원인데 호텔에서 쓰는 제주산망고 가격을 생각하면 육만사천원은 혜자였습니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하프소리를 들으며 빙수를 먹으니 마치내가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잠깐 하다가 이건 마치 명품브랜드에서 파는 키링과 같은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명품은 사고 싶고 갖고 싶은데 비싼 가방은 못사니까 키링이라도 사는, 호텔에서 자고 놀고 먹고 싶은데 그건 못하니깐 빙수라도 먹는 그런거랑 비슷한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음엔 원래 하고싶었던 수영장 조식패키지를 예약하고 수영장에서 판다는 그 비싼 짬뽕을 먹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빙수를 먹고 울프강예약시간까지 시간이 좀 떠서 한강에서 소화를 시켰습니다. 이제 여름이 끝났다는걸 알려주는 날씨였습니다.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에 도착했습니다. 또 발렛을 맡기고 매장으로 들어가는데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마주하니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더 킹’에서 정우성과 조인성이 같이 스테이크를 썰던 장면에서 나온 곳인데 영화에서 보았던 권력을 제가 가진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또 느꼈지만 금방 착각에서 깨어났습니다. 예약할때 기념일 체크하는 문항이 있어 생일이라고 체크했는데 그것때문인지 몰라도 일반 테이블이 아닌 부스테이블 같은 곳으로 안내받았습니다. 마실 물도 생수, 미네랄워터, 탄산수중에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15만원 정도 되는 코스를 시켰는데 큼지막한 티본스테이크가 포함된 코스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만사천원짜리생토마토와 생양파도 함께 포함돼있었습니다. 음식과 서비스는 굳이 설명할 필요없이 좋았습니다. 돈쓰는 맛은 이런거구나 싶을정도였습니다. 생일이라고 작은 케이크에 촛불도 꽂아주셨습니다. 우리 가게에 얼마전에 생일이라고 예약한 손님이 있었는데 묻지도 않았는데 왜 생일이라고 하는걸까 의아해 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됐습니다. 

뭐가 얼마고 뭐는 얼마였다 적는게 없어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생일의 목표는 저게 뭐길래 저돈을 쓰는걸까 안좋게만 보는게 아니라 직접해보고 느껴보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다 이유가 있다’ 였습니다. 망고빙수는 오히려 돈을 버는 느낌이었고 코스에 포함돼 있긴했지만 토마토 두조각과 양파 두조각을 만사천원 주고도 먹을만 하구나 알게됐습니다. 이만오천원짜리 발렛은 앞으로 이용할일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좋은날을 기분좋게 보내기 위해서는 쓸만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건 아쉬움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한번 해봤으니 그게 나한테 맞는 가치인지 아닌지를 알게됐고 또 새로운 길이 열린 느낌입니다. 당분간은 라면도 못먹을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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